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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YMCA

서울YMCA는 황성기독교청년회를 모태로 한다.YMCA는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의 약자로 1844년 영국 런던에서 최초로 결성되고, 1850년대 이후 미국에서 크게 발전한 청년단체였다.한국에 온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같은 선교사들이 한국 청년들 150명의 진정서를 첨부해 미국에 있는 YMCA국제위원회에 제출하였다.그 결과 1901년 9월에 질레트가 창설간사로 한국에 파송되었다.1902년 세계학생기독교연맹에 한국 학생YMCA가 가입하였다. 그리고 1903년 10월 28일에 황성기독교청년회가 결정되었다. 1904년에는 이상재, 김정식,이원긍, 이승만, 신흥우, 김정식 등과 같은독립협회나 개혁당에 관련되어 감옥에 복역했던 이들이 '옥중 개종'을 하여출옥 후..

공간공감 2025.04.01

구세군사관학교(현 구세군역사박물관)

구세군은 1865년 윌리엄 부스가 기존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홀하다고 생각하고,거리에서 직접 설교하며 구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기독교선교회'라는 이름이었지만, 1878년 '구세군'으로 개명하고 군대 조직을 본떠 운영하기 시작했다. 1907년, 일본에서 활동하던 구세군이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하기 시작했고, 1908년 구세군 선교사 로버트 호가드가 내한하였다.  호가드 선교사는 종로구 평동76-9번지에 선교부지를 마련하였으며 야주개에 있는 '홍화경매소' 건물을 임대하여 첫 번째 교회(구세군에서는 영문이라고 함)을 설립하였다. 1910년 평동에서 시작한 구세군사관학교는 이곳에 있던 옛 선원전 부속건물을 헐고 220여 평 규모의 2층 붉은 벽돌건물을 건립하여 입주하였다. ..

공간공감 2025.03.24

배재학당 동관 (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약식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선교사 아펜젤러는 자신의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서소문 언덕에 7천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1886년 6월 학교를 열었다. 1887년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지어주었다.학생들이 급증하자 100여 평의 단층 르네상스식 벽돌 건물을 짓고 강의실, 도서실, 예배실로 사용하였다. 학생들이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도록반지하에 작업실도 마련하였다. 이 작업실에서 한글, 한문, 영어 3개국의 활자판을 갖고 책을 인쇄하였기 때문에 '삼국문자인쇄관' 혹은 '삼문출판사' 등으로 불렸다.이 출판사는 학당 옆에 독자적 건물을 갖추고 '감리교 출판사'로 발전하여 기독교 관련 서적을 출판하였다.​많은 시간이 흐르고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배재학당 시절의 유일한..

공간공감 2025.03.14

정동제일교회 & 시병원터

이 교회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로서 1887년 10월 9일 창립되어 1897년 지금의 자리에 예배당을 봉헌했다.예배당이 서기 전에 이 곳에는 감리교 최초의 병원인 시병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1885년 5월 북감리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스크랜턴은 덕수궁 서쪽 성벽 아래의 한옥을 선교사 사택으로 매입했는데이 집은 사랑채와 헛간이 딸린 두 채의 가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그곳에서 아펜젤러 부부와 스크랜턴 가족이 함께 살았다.스크랜턴은 처음에는 사랑채에서 진료를 시작하였지만 집을 하나 더 구입하여18886년 6월 15일 정식으로 병원을 열었다. 이 병원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빈 병에 약을 담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시약소'로 불렸다.  그 후 1887년 정부에서 '시병원'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자 스크랜턴은'미국의원..

공간공감 2025.03.13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898년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코르프 신부가 한국 주교로 서품을 받으면서 한국 성공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코르프 주교는 트롤로프 신부를 비롯한 사제와 신학생, 의사와 인쇄기술자로 구성된 선교진을 이끌고 1890년 9월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성공회의 초기 선교부는 서울 낙동과 정동 두 곳이었다.현재 고려대연각타워 자리(중구 퇴계로 97)에 있던 낙동 선교부에는 선교사 사택과  인쇄소, 남성병원인 성마태병원이 있었고, 일본인 교회와 한국인 교회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러일전쟁으로 이곳이 일본군 병참기지로 사용되면서 낙동 선교부는 철수하였다. 이 때 낙동 선교부에 있던 한국인 교회인 부활성당이 정동으로 옮겨와 여성 병원인 성베드로 병원 건물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교인이 계속해서 늘어나자성당 신축의 필요성이 제..

공간공감 2025.03.11

배화여학교 여선교사 사택(현 배화여자고등학교 생활관)

1898년 남감리회 선교부는 경복궁 부근의 고간동, 지금 서울경찰청 자리에1,000여 평의 땅을 구입하여 여선교부 부지로 삼았다.한국에 온 최초의 여선교사인 조세핀 필 캠벨 여사가 이 남감리회 여선교부에서여학생 6명으로 기숙 학교를 시작했다.이것이 배화여학교의 출발이다. 1900년 여선교부는 2층 벽돌 건물 두 채를 지어 교사와 선교사 주택으로 사용하였다.학교 이름은 캐롤라이나 학당이었지만 한국인들은 동네 이름을 따라 '잣골학교'로 불렀다.1903년 학부 인가를 받았으며 윤치호가 '배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선교사들은 학교 운영과 함께 교회도 개척하였는데1901년 학교 구내에 '루이스워커 예배당'을 지어 교회로 사용하였다.  1913년 남감리회는 공간 부족과 위생상의 이유로 선교부를 사직단 뒤쪽으로 ..

공간공감 2025.03.10

향수병 feat. 술핑계

201901펜, 마커, 흰색 색연필 on 크라프트지270x186 (mm)@서울시 성동구 송정동​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밤 북극곰 과장님은 퇴근하는 길에 포장마차 앞에서 발을 멈췄어요.포장마차에서 풍겨오는 어묵냄새가 고향 알레스카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을 생각나게 했거든요.​... 안되겠어요...어묵에 소주 한 잔 해야겠어요.^^​#홍군 #펜화 #신한마커 #피그마마이크론 #북극곰 #포장마차 #향수병 #술핑계 #illust #pendrawing #성동구 #송정동 #동화 #cityfairytail #우리동네 #동네동화 #신한마커 #크라프트지 #일러스트 #손그림 #어반스케치​오래된 것들에는 이야기가 쌓인다. 그렇게 설화가 되고 전설이 되고 민담이 된다.일상을 살아가는 동네의 골목골목의 풍경에도 쌓인 시간만큼 이야기..

태화여자관 터 (현 태화빌딩)

20140323211mm X 287mm / 동아 파인테크펜0.3mm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5길 29​현재 태화빌딩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역사적인 장소이다.이 건물은 원래 친일파 이완용의 소유였으나 안순환이 임대하여 태화관이라는 요리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태화관 후원에 위치한 '별유천지 6호실'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다.​3.1운동 이후 이완용이 이 저택을 매물로 내놓았을 때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매입하였다.여선교부는 옛 건물을 다소 손질하여 1921년 '태화여자관'이라는 사회사업 기관을 개관하였다.초기에는 여성들의 교육과 자립을 돕는 시설로 시작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사회복지 활동이 더욱 확대되어 고아 및 빈곤층을 위한 지원 사업을 활발히 했다. ..

공간공감 2025.03.07

연지동 북장로회 선교부 선교사사택(현 장로교출판사)

20140218 159mm x 169mm /동아 파인테크펜0.3mm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3길 29 서울에 북장로회 선교부는 원래 정동에 있었지만 낙후된 선교사 사택문제, 길 건너 북감리회와의 관계, 정부의 덕수궁 확장 시도 등의 요인에 의해 1894년경부터 폐쇄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그리고는 1903년 연지동 136번지 일대 대지를 구입하고 선교사 사택 7채를 건축하였다. 이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사택이 바로 이 건물이다. 2014년까지는 장로교출판사 사무실로 이용되었다.  선교사 사택들과 정신여학교와 경신학교,연동교회로 이루어져 '양관동네'로 불리기도 한 연지동 북장로회 선교부는 23,000평에 이른 적이 있을 정도로 컸다. 지금까지도 이 일대는 기독교 단체들이 매우 많아 '기독교 동네'..

공간공감 202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