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8년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코르프 신부가 한국 주교로
서품을 받으면서 한국 성공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코르프 주교는 트롤로프 신부를 비롯한 사제와 신학생,
의사와 인쇄기술자로 구성된 선교진을 이끌고
1890년 9월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성공회의 초기 선교부는
서울 낙동과 정동 두 곳이었다.현재 고려대연각타워 자리(중구 퇴계로 97)에 있던
낙동 선교부에는 선교사 사택과 인쇄소, 남성병원인 성마태병원이 있었고,
일본인 교회와 한국인 교회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러일전쟁으로 이곳이 일본군 병참기지로 사용되면서 낙동 선교부는 철수하였다.
이 때 낙동 선교부에 있던 한국인 교회인 부활성당이 정동으로 옮겨와
여성 병원인 성베드로 병원 건물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교인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성당 신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1926년 서울주교좌성당을 건축하였다.

이 성당은 70년에 걸쳐 완공된 건물이다. 1890년 12월 21일 영국 공사관 옆 초가에서
초대 주교 코르프 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이 성당의 모체인 '장림성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11년 3대 주교로 부임한 트롤로프 신부가 '앵글로 가톨릭 의회'로부터
건축비를 지원받아 1923년 '터너 주교 기념 성전'으로 명명된 지하성당을 완공하고,
1926년 '성모 마리아와 성니콜라 대성당'으로 명명된 본당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이때 축성된 성당은 건축비의 한계로 처음 구상한 규모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완성 성당이었다. 그러다가 한국 성공회가 1993년 성공회에서
독립적인 행정과 사목 권한을 가지며 자체적인 총회를 운영할 수 있는 하나의 관구로
독립하면서 '대한성공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 성당건축을
본격화하여 본당 축성식을 하고 70년이 지난 1996년 지금 모습의 성당으로 완성되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편.<믿음의 흔적을 찾아> 참고-

처음 이 대성당을 봤을 때는 그저 놀라웠다. 2000년대 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마치 정동 한복판에서 외국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건물을 이제야 알았던게 참 아쉬웠었는데 이렇게 이곳의 역사를 알고보니
그 때가 이 곳이 완공된지 얼마 안된 시기였던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그림이 내 전체 공간공감의 그림들 중에 가장 아픈 손가락인 그림이다.
딱 이 그림의 원본만 없기 때문이다 ㅠㅠ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보이질 않아서 온 집 안을 다 뒤졌는데도 나타나질 않아 두고두고 아쉬운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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