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교회는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로서 1887년 10월 9일 창립되어 1897년 지금의 자리에 예배당을 봉헌했다.
예배당이 서기 전에 이 곳에는 감리교 최초의 병원인 시병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1885년 5월 북감리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스크랜턴은
덕수궁 서쪽 성벽 아래의 한옥을 선교사 사택으로 매입했는데
이 집은 사랑채와 헛간이 딸린 두 채의 가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아펜젤러 부부와 스크랜턴 가족이 함께 살았다.
스크랜턴은 처음에는 사랑채에서 진료를 시작하였지만 집을 하나 더 구입하여
18886년 6월 15일 정식으로 병원을 열었다. 이 병원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빈 병에 약을 담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시약소'로 불렸다.

그 후 1887년 정부에서 '시병원'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자 스크랜턴은
'미국의원 시병원'이라는 이름을 영어, 한국어, 한문으로 쓰여진 3개국어 간판을 붙였다.
그리고 간판에는 영어와 한글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병 있는 누구나
어느 날이든지 낮10시에 빈 병을 가지고 와서 미국의원에게 보이시오"라고 썼다.
빈 병을 가져오게 한 이유는 환자들이 약병을 한 번 가져가면 안 가져왔기 때문이다.
1897년 스크랜턴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남대문 부근의 상동으로 병원을 옮겨
빈민 치료에 힘썼고, 병원이 떠난 자리에 정동제일교회의 예배당이 봉헌되었다.

정동제일교회는 1887년 '벧엘교회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다.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시작된 벧엘교회당은 상동지역,
현재의 남대문로 3가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벧엘교회당의 교인들이 늘어나자 시병원 근처에 새 예배당을 세워 교회를 이전하였다.
이 건물의 외부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고딕풍을 취하고 있지만
내부는 설교 중심의 단순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개신교회 예배당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편. <믿음의 흔적을 찾아> 참고 -

이 곳을 그릴 당시 나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였다.
그래서 너무 뻔한 교회의 모습을 그리기 싫어서
굳이 교회의 정면이 아닌 뒷면을 선택해서 그렸다.
시간이 지나서 이 그림을 보니 이 교회 건물만의 특징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라 사람들에게 잘 인식이 안될 것 같아
너무 아쉽다.
그리고 기독교 유적을 찾아다니며 알게된 사실인데 교회에 붙는
'제일'이라는 단어는 그냥 붙는게 아니라 최초, 첫번째의 의미를 갖는 뜻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보통 그냥 정동교회라고도 부르지만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라는 의미를 담아 '정동제일교회'라고 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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