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8년 남감리회 선교부는 경복궁 부근의 고간동, 지금 서울경찰청 자리에
1,000여 평의 땅을 구입하여 여선교부 부지로 삼았다.
한국에 온 최초의 여선교사인 조세핀 필 캠벨 여사가 이 남감리회 여선교부에서
여학생 6명으로 기숙 학교를 시작했다.
이것이 배화여학교의 출발이다.

1900년 여선교부는 2층 벽돌 건물 두 채를 지어 교사와 선교사 주택으로 사용하였다.
학교 이름은 캐롤라이나 학당이었지만 한국인들은 동네 이름을 따라 '잣골학교'로 불렀다.
1903년 학부 인가를 받았으며 윤치호가 '배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선교사들은 학교 운영과 함께 교회도 개척하였는데
1901년 학교 구내에 '루이스워커 예배당'을 지어 교회로 사용하였다.

1913년 남감리회는 공간 부족과 위생상의 이유로 선교부를 사직단 뒤쪽으로 이전하였다.
배화여학교 역시 1916년 지금의 배화여자고등학교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 때 독신 여선교사들을 위한 사택으로 이 건물이 지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배화여자고등학교 생활관'으로 불린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서 편. <믿음의 흔적을 찾아> 참고-

이 생활관을 처음 봤을 때 꽤나 놀랐다.
한강 아래쪽에서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했던 내게는 학교가 이렇게 넓은 것도 신기했고
영화나 역사책에 있을 듯한 건물이 있는 것도 참 신기했다.
그리고 이 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모를 때 이곳은 그냥
서촌을 돌아다니다보면 보이는 학교가 이쁜 학교정도였지만
이 곳의 역사를 알게되니 이 학교와 서촌 이 공간을 향한
많은 크리스챤들의 섬김과 사랑이 느껴지며 남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말 아는만큼 더 많이 보이고 더 깊이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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